창 밖에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다. 꽤 시간이 늦어져가서 남은 건 유도부실에 나뿐이었다. 연습을 하는 것은 기분이 좋다. 유도 생각만 하느라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게 되니까. 1시간도 전에 니이나는 그 녀석과 함께 돌아갔다. 별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아니, 상관없는 건 아니지. 오히려 저녁이 다되어가는 시간이니까 여자인 그 녀석을 니이나가 데려다주는 편이 훨씬 낫다.
“후우.”
별로, 알고 있었다. 요즘 둘의 사이가 부쩍 좋아졌단 것쯤은. 스스로도 눈치가 없단 건 자각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 티가 나면 아무리 나라도 알 수밖에 없다. 솔직히 그 둘의 분위기로 안 건가, 아니면 아까 창 밖 멀리서 둘이 슬쩍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나서 아 그랬던 거구나 하고 깨달은 건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에서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왜 모른 척 할 필요가 있는 건지조차 스스로 알 수가 없다. 별로,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래, 별로 상관없다. 그 둘이 사이가 좋으면 좋은 거지. 둘 다 좋은 녀석들이니까.
어라, 어제 그 기술, 어떻게 하는 거더라? 노트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이어폰을 끼곤 동영상을 찾아 튼다. 짤깍짤깍 마우스를 눌러 기술의 구간을 찾았다. 아 맞다, 저렇게 하는 거였지. 두세 번 반복해 본 뒤에 이어폰을 빼곤 다시 연습을 시작한다.
여기서 손을 이렇게 하는 거였지. 고작 어제 본 기술인데 잊어버리다니. 어라, 어제하면 니이나가 어제 연습에 늦었던가? 아 맞아, 둘이 같이 늦었지. 그건 주의 주지 않으면...하지만 5분 정도니까 괜찮으려나-아니 그래도 역시 계속 그런다면 문제니까. 아, 지금 내가 무슨 기술 하던 중이더라? 아, 어제 그 기술이었지. 집중을 해야 하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는 것 같지가 않다. 주말엔 연습량을 두 배로 늘려야지 안 되겠어. 그리고 보니 저번 주 주말에 둘이서 무슨 콘서트 이야길 하던데, 같이 갔다 온 건가? 흐-응, 둘 다 그런 취향이던가? 나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왠지 그 대화에 낄 수가 없었던 건 왤까? 이제 와서 왤까, 하고 생각해봐도 딱히 바뀌는 건 없지만. 어쩌면 둘이서만 다녀온 콘서트의 이야기라서 인지도 모르지. 그냥 평범한 대화였다면 신경 쓰지 않고 같이 대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뭘 신경 쓰지 않고 대화한다는 거지? 별로 내가 신경 쓸 것 따위 없잖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고.
아차, 주말에 연습량 늘리는 생각에서 왜 또 이런 게 튀어나온 거지? 안되지 안돼. 연습에 집중하지 않으면. 엊그제 걸렸던 발의 움직임을 조금 신경써보자. 그리고 보면 니이나가 지적한 거였지. 녀석, 이제 제법 눈썰미도 올라가서 내 움직임을 지적할 정도가 된 건가. 그렇게 치면 그 녀석도 처음 매니저가 됐을 땐 아무것도 몰랐었다. 난 무슨 일을 하면 되냐며 물어올 정도 였으니까. 유도를 배워야한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었지. 하지만 꽤나 빠르게 많은걸 배웠다. 물론 이론 얘기지만. 그 녀석 나름대로 이론으론 많은걸 안다고 이것저것 흉내 내는 시도를 해보지만 내 한 손에 막히는 정도다. 역시 여자라 그런지 손이 작긴 작았다. 아, 니이나가 이상하게 쳐다보던 게 그때였나? 앞으론 주의해야겠지. 아니, 뭘? 뭘 주의해야하지? 별로, 나랑은 상관없잖아. 아아 이런, 또 이상한 생각으로 빠져버렸다. 안되겠다. 오늘은 이정도로 할까.
툭, 땀을 닦은 스포츠타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니이나와 그 녀석이 돌아간 것도 벌써 2시간 전이다. 니이나는 그 녀석을 잘 데려다 줬을까? 별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창문 밖을 보니 아까의 붉었던 하늘은 짙푸른 군청색으로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