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를 끝마치고 들어온 집은 싸늘하고, 어두컴컴했다. 깜빡깜빡, 형광등이 밝아지고 마도카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좀 무리를 했는지 몸이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겉옷을 벗어서 대강 던진 다음 목욕물부터 데우러 욕실로 향했다. 아아~이렇게 집에 들어왔을때 웃으면서 목욕물이 준비됐다고 말해주는 여자가 있으면 확실히 행복할거야, 라고 무심코 생각하는데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아니지, 안돼.
"말도 안되지."
그 애는 나같은 녀석이랑 어울릴만한 아이가 아니다. 몇번을 다짐해야 속이 시원한걸까. 그래도 무심코 떠올리고 마는 것 이다. 마도카는 고개를 휘휘 젓고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정신차려라, 키죠 마도카를 몇번 되뇌인 후에 목욕물을 받았다. 오늘은 목욕만 하고 바로 자버리자-하고 집으로 오는 와 중에 다짐했던것이다. 그만큼 오늘 일은 좀 고됐다. 심지어 히무롯치까지 와서 그 딱딱한 얼굴로 서있었으니까. 차의 멘테넌스라던가, 오는 것은 좋지만 생활지도 할 것 처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 만은 좀 그만둬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한것도 아닌데 괜히 도망가고 싶어진다니까. 목욕물이 받아지는동안 대강 주위에 있던 바이크 관련 잡지를 읽었다. 10번도 넘게 읽어서 이미 내용은 외우고 있지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뭔가 숙제가 있었던것도 같은데...대강 내일 학교에 가서 다른 애들한테 보여달라고 해야지. 지금은 머리를 쓰고싶은 생각이 전혀 안들었다. 평소라고 숙제나 공부에 머리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드냐면 그건 또 아니었지만.
"으히~좋다~"
따끈따끈한 목욕물에 몸을 담그자마자 한숨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역시 일본인은 목욕이지. 마도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몸이 노곤노곤 해지는게 느껴졌다.
'미나코쨩.'
'왜?'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마도카를 바라봤다.
'아니, 그냥 이렇게 나랑 같이 있어도 되나 싶어서.'
'같이 있으면 안돼?'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에 마도카는 할 말을 잃었다. 안돼, 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냥 하하 웃어버렸다. 머릿 속에서 같이 있으면 안돼? 라는 미나코의 말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휘젓고다녔다.
같이 있으면 안돼?
같이 있으면 안돼?
같이...
같이 있으면 왜 안돼? 마도카?
"헉?!"
번뜩, 마도카는 눈을 떴다.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졸아버린 모양이었다. 아직도 머릿 속에선 그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촤아악, 물 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이러다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다. 알바를 빠져서야, 이번달 좀 위험하니까.
몸을 말리곤 잠 잘 준비를 하려다가 마도카는 문득 내일 점심 도시락을 완전히 잊고 있었단걸 떠올렸다. 에이, 그냥 사먹자-라고 월초라면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좀 전에도 떠올렸듯 이번달은 좀 위험한 것이다. 도시락은 필수. 사실 여차하면 학교 여자애들한테 얻어먹는건 일도 아니었지만 왠지 요즘엔 그럴 마음이 들질 않았다. 아니 들지 않다 뿐인가 그러고싶질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은 이유에 생각이 미칠려는 찰나 마도카는 생각을 재빨리 멈췄다. 도시락을 생각하라고, 키죠 마도카. 도시락.
어차피 만드는건 내일 아침이고 내일 아침 생각해도 되겠지만 아침에 우왕좌왕 해본 일이 당연히 몇번 있었기에 생각, 준비를 해놓고 자는 편이 효율이 월등히 좋았기에 침대 맡에 앉아 마도카는 고민했다. 누워서 고민했다간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 같아서. 간단한 메뉴, 최근 먹었던건 제외하고 집에 있는 재료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또다시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볶음밥을 만들어 간 날이었다. 맛있다면서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좋아. 볶음밥."
그대로 침대위로 무너지듯 누웠다. 안된다고, 그 아이에게 가까워지면 안된다고 몇번을 생각하고 거리를 두려고 해도, 이렇게 뭘 하든 생각이 나버려서야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도카는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