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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31 기억
- 2012.07.18 하리X데이지 친우기반 팬픽
- 2012.07.18 테루X데이지 친우기반 팬픽
- 2012.07.18 시바X주인공 친우기반 팬픽
글
기억
사에키 테루 시점의 단편 팬픽입니다.
친우모드 비슷한 느낌의..?
친우관계라고 설정한건 아니지만 대략 데이지한테 딴 남자 생겼을때라는 설정.
히나기쿠=데이지
앞으로 2 팬픽 쓸땐 데이지 이름은 히나기쿠로 설정해야징
언제나처럼 웃고 떠들었다. 언제나와 똑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비꼬고, 놀리고, 그러면 그녀는 발끈해서 덤벼들고 그러면 나는 못이기는 척 당해주고. 그렇게 똑같았다. 어제도, 오늘도.
오늘도.
오늘도 똑같아야했는데.
그녀는 기억을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기억을 못하는 것일 뿐일까 아니면 완전히 지워버린걸까. 그냥 어릴 적 한번 있었던 그저 그런 일화들 중 하나같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그런 에피소드. 분명히, 나에게도 비슷했을 터였다. 조금은 특별한 어릴 적의 에피소드. 다시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다시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기억이란 건 잔인하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억이란 것은 그 무엇보다 잔인하다. 분명 같이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가 존재하건만, 그 기억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내가 아무리 그 기억을 특별히 여겨도, 그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할 다른 이가 그 기억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면-아니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지웠다면...이 기억을 품고 있는 내가 갈 곳은 어디란 말인가. 그녀가 버린 기억을 나 홀로 소중히 손에 쥐고 내가 서있을 곳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도 그래야 했던 걸까, 기억, 어린 시절 있었던 별 것 아닌 기억 따위 세월로 묻어버려, 더 이상 꺼내면 안됐던 걸까? 그런데 왜 그녀는 내 앞에 나타나 묻어뒀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거지.
너는, 왜 내 앞에 다시 나타나서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다른 사람의 옆에서.
오늘 우연히 보게 된 그 모습은,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단순하다. 그렇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 라니, 장난하나...이름도 뻔히 아는 주제에. 하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더 자세하게 말해버리면 머리가 그걸 현실로 받아들여버릴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뭉뚱그려야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마치 신문 기사를 읽어내리 듯, 나랑은 관계없는 그저 그런 스타들의 연애 가십거리처럼. 그냥 지나가듯이 흘려버릴 수 있는 그저 그런 이야기 처럼, 받아들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내 기억은, 그때의 약속은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중요하지 않다. 사실 그래, 나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아야한다. 나는, 좀 더 중요하고 좀 더 현실적인 일로 몸과 머리가 바빠야만 한다. 이런 연애장난같은 고민 같은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않아야만 한다. 나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없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 그것 따위가 다 뭐야. 그래 그렇지, 상대방이 기억하지 못하는 약속 따위가 다 무엇인가.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 약속, 존재할 의미가 사라진 그 기억에 내가 더 이상 얽매일 필요는 없다. 없다. 없는 거다. 없어야한다. 나에게 그런 여유는 없다. 없어, 없는데...
“테루?”
“아, 응, 뭐야 너였냐?”
“뭐해? 종례도 끝났는데 멍하게. 가게 안가?”
“가. 갈거야. 가야지.”
“그래?”
없는데, 넌 왜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나한테, 자꾸만 웃으며 말을 거는 거야.
“히나기쿠. 너, 혹시 어렸을 때-”
“아, 미안. 테루- 나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되겠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내일 봐~”
“...그래.”
그녀는 교실 밖을 나갔다. 그리고 교실엔 나 혼자 남아있었다. 창문 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기울고 있었다. 가게, 빨리 가야하는데.
의미를 잃은 기억이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을 느꼈다.
발길을 돌리자 갈 곳을 잃은 약속이 창문 밖에서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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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X데이지 친우기반 팬픽
하리X데이지 친우애정기반 팬픽.
본심상대는 역시 사에키 테루.
만만한게 테루지.
하네가사키의 음악실에서 하리야 코우노신-통칭 하리-는 만드는 중인 곡을 듣고 있었다.
“음, 좋아.”
곡을 만드는데는 모티브랄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것은 요즘 부쩍 가깝게 지내는 한 여자아이가 담당하고 있었다. 본인은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기타의 이름도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녀석과 함께 있으면 여러 가지로 즐거웠다. 지금 듣고 있는 곡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 했으리라. 꽤나 성공적인 음률을 들으며 하리는 혼자 만족했다.
“하리-.”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생글생글한 눈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며 하리는 끼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오오, 좋은 때에 왔네, 너.”
“응? 좋은 때? 뭐 듣고 있어?”
“그때의 그 곡 거의 완성이야-이리와.”
이어폰의 한쪽을 건네자, 그녀는 하리의 옆에 와 앉으며 귀에 이어폰을 꼈다. 줄은 그다지 길지 않아, 자연스레 둘은 가깝게 붙어 앉는 형식이 되어버렸다.
“아아, 멋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음을 즐기듯이 조금 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 열어둔 창문에서 불어온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려 하리를 간지럽혔다. 하리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지. 녀석은 너무 경계가 없어. 언제나 긴장하는 것은 자기 혼자 뿐.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봤다.
“에…….”
워낙 가깝게 앉았던 터라 거의 코를 맞대고 있는 지경이었다.
그녀의 눈이 자신을 보는 게 느껴졌다.
“하리-…?”
입술이 벌어지며 자신의 이름이 들려왔지만 그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리가 보고있는건 그저 그 벌어진 입술-…….
“어이-너네 둘, 뭐하는 거야?”
“에엑!”
난데없는 제 3자의 개입에 하리는 크게 놀라 벌떡 일어서 버렸고, 그 결과 그녀가 같이 끼고 있던 다른 쪽의 이어폰이 귀에서 거칠게 빠져버려 그녀마저 크게 놀라버렸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사, 사에키. 너였냐.”
“으…아파…갑자기 일어서버리면 어떡해, 하리-.”
각각의 불평이 나오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에키 테루는 이미 이어폰이 빠져버려 더 이상 방해물이 없는 그녀와 하리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앉아버렸다.
“뭐하고 있었던 거야 둘이서 그렇게 가까이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고, 둘이 그런 사이였던 거?”
사에키는 학원내의 평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태도로 짓궂게 하리에게 말했다. 예전부터 꽤나 친분이 있던 그는 자신이 재학 중인 하네가사키의 프린스라고 불리고 있었다. 자신과 그녀의 앞에서는 그런 이미지는 전혀 상상되지 않지만, 다른 이의 앞에서는 180도 바뀌어버리는 태도를 하리는 여러번 목격하고 있었다. 한가지 의외인 점은, 남자 친우인 자신 말고도, 여자인 그녀 앞에서 마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랄까, 여자아이에게는 예의 왕자님 모습을 관철하는 그를 봐오던 하리로써는 크게 의외일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
“농담하지 마, 테루.”
그녀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사에키는 수도로 춉을 날렸다. 그녀는 부산스럽게 피하며 역공을 날렸고, 사에키는 그 손을 잡아 다시 한 번- 하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둘을 가만히 지켜봤다.
자신이 그녀를 좋아한다, 라는 것은 아무리 연애 쪽에 민감하지 않은 하리 자신도 인정하고 있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까처럼 심장이 고장 난 것같이 두근거린다거나,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하진 않으니까.
그녀도, 자신이 단순히 친구일 뿐이라면 데이트를 한다거나 할 때 그만큼 무의식적으로랄지, 들러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일까.
그녀가 지나치게 자신을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부터? 아니면,
사에키와 함께 3명이서 어울리기 시작한 후부터?
3명이서 어울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부러 안 어울린 것은 아니고, 단순히 하리 쪽에서 그녀와 사에키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에키는 여자라면 언제나 피하려들었으니까.
“안녕, 테루.”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던 사에키에게 놀랍게도 이름을 부르며 접근했을 때, 하리는 사에키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나오는 건가, 그 왕자님 연기-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또 다시 하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에키는 자신을 대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태도로 그녀를 맞이한 것이었다.
“어, 뭐야-너였어? 놀랐잖아.”
“응, 하리도 오스-둘이 뭐하고 있었어?”
둘이 이미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안 후 부터는 사에키 쪽의 특성 때문인지, 자연스레 3명이서 어울리는 때가 많아지게 되었다.
사에키와 그녀는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춉을 날리고, 그런 둘을 바보 같다며 놀리고. 하지만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걸 느낀 건 자신뿐일까, 아니면 자신 혼자 엇나가기 시작한걸까.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후부터였을까, 조금씩 3명의 관계에 하리는 위화감을 느껴버린 것이다.
“너…….”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처음으로 마음속에 생긴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다음의 라이브 일정이 잡혀, 신이 나서 그녀에게 말해주려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을 때, 하리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자신과 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마치 연인처럼 함께 걷고 있는 그녀와 사에키였다.
평소처럼 그녀의 반응이 ‘어? 하리-오스, 무슨 일이야?’ 라던가 였으면 지금처럼 화가 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가득한 감정은 분명히 ‘당황’이었다.
“하리야? 너……”
사에키의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풀고 다가오려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 녀석한테 볼일이 있었을 뿐. 다시 연락 할 테니까.”
하리는 뒤돌아 집으로 뛰었다.
라이브를 대실패 한 후에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실망감, 그리고 상실감-이 몰려왔다. 이곳에서 도망쳐봤자, 그 후에 올 상황은 바뀌지 않을 텐데.
일단은 이 장소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적어도, 적어도 ‘사에키 테루’가 없는 장소로 가고 싶었다.
집에 도착 한지 좀 지나서, 머리가 식었는지 오히려 달아올랐는지, 하리는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간지 얼마 채 되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하리-?”
“응, 나. 아까 일, 들려줘.”
마음을 다 잡고 말하자, 그녀가 제대로 얘기해줄 것이 있다며 직접 만나자고 해왔다.
순간이동을 한 기분으로 어느샌가 하리는 바닷가에 와 있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정신없이 나와서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었다. 제대로 된 건, 언젠가 그녀에게 주려고 마음먹었던 반지뿐.
“하하, 이제 줄 일도 없겠지만.”
“응?”
실소가 터져 나와 혼잣말을 하자 어느새 왔는지 그녀가 뒤에서 되묻고 있었다.
뒤돌아보자 잔뜩 긴장한 표정의 그녀가 보였다. 아마 하리가 조금이라도 화를 낸다거나 하면 금세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
“…하리. 사실은 나……테루를, 좋아해.”
“…….”
사실 배신감을 느껴야 할 이유따위 없었다. 그녀에게 제대로 고백해 본 적도 없었고, 그녀에게서 ‘좋아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하리가 느끼고 있는것은 지독한 배신감이었다.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화를 내고 싶었다.
다른 녀석, 그것도 사에키를 좋아한다고? 그럼, 도대체 여태까지의 우리는, 아니 나는 뭐였던 거야? 왜 날 그렇게 대했던 거야? 왜 날 ‘착각’하게 만든 거야? 왜 날 혼자 들뜨게 만들었던 거야?
도대체 왜?
하지만, 차마 그럴 수 는 없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싫었으니까.
“그래서…그래서……미안해.”
그녀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과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불안해졌는지 그녀는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하리-?”
언제나 하리가 약해지던, 그 눈으로 올려다보는 얼굴. 그것도 눈물을 담은 눈으로, 그녀는 하리를 그렇게 올려다봤다. 묵묵히 바라보던 하리는 그 모습을 보곤, 언제나처럼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흐트러트려 놓았다.
“사과할 필요 없어. 화내는 것 아니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마.”
“하리…….”
“놀란 것뿐이야. 설마 사에키 녀석일 줄은 몰랐으니까-좋아, 알겠어. 응원해 줄 테니까, 제대로.”
점점, 그녀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보인다. 하리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마지막으로, 힘겹게-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말을 입 밖에 냈다.
“그 대신, 절대로 성공시켜.”
“응!”
사실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음에도, 그녀는 너무나도 기뻐보였다. 눈에 띄게 안도한 얼굴에, 하리는 다시 한 번 실소가 나오는 게 느껴졌다.
“고마워, 하리, 나 정말 힘낼게!”
“그래.”
하지만 끝끝내, 하리의 입은 ‘힘내라’는 말만은 입 밖에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이, 하리야.”
방과 후 정신없이 작곡에 빠져있다 문득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사에키 테루가 있었다.
“요즘 잘 안보여서 걱정했다구. 기타 가르쳐주던 것도 그만둬버리고, 정말 책임감 없는 녀석.”
앞의 의자에 거꾸로 앉으며 사에키는 하리가 끄적이던 노트를 주시했다.
그녀에게서 ‘고백’을 받은 후, 하리는 사에키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기타를 가르쳐주던 것도 그만둬 버렸고, 만나도 인사정도만 하고, 일부러 찾아가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사에키는 몇 번인가 할 얘기가 있다는 듯, 마주쳤을 때마다 하리를 붙잡으려 했었지만 주위의 친위대들이 가만두질 않아 번번이 실패에 그치곤 했다.
“무슨 일 있었냐?”
여전히 노트만 주시한 채로, 사에키는 물어왔다. 조금 기울은 해가 교실을 노을빛으로 물들인다. 하리는 조그맣게 그다지, 하고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시선은 노트에 박혀있었다.
붉은 빛으로 물든 교실에서 두 명은 조용히 노트만을 주시한 채로.
숨 막히는 몇 분이 지난 후 사에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녀석한테, 무슨 얘기 들었어?”
“……전혀.”
동요를 숨기지 않으려 노트를 주시한다. 하지만 질문과 대답사이의 간격이 이미 충분히 동요했음을 보이고 있었다.
“하리야……너―”
“하리-! 내일모레 말인데―앗?”
드르륵, 기세 좋게 열린 문은 사에키의 말을 가로막고, 힘차게 내뱉은 말은 두 사람의 주목을 이끈다. 문가에는 다름 아닌 그녀가 와있었다.
“에…엣, 저기 테루도 있었네?”
“…내일 모레 둘이서 약속 있는 거야?”
“엣, 아니…그게…….”
“뭐야, 방해한 것 같네.”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모습에 사에키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쓴웃음 짓는걸 바라보며 하리는 노트를 덮었다.
“너도 올래?”
“하, 하리!”
자리에서 일어나 사에키와 마주 본다. 그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건 조금 떠보는 의도.
“별로 상관없다고. 데이트 같은 것도 아니니까. 라이브의 복장 때문에 쇼핑하러 가는 것일 뿐이야.”
“그래?”
사에키는 알 수 없는 눈으로 하리를 바라봤다. 그것은 분명 여태까지의 ‘친구’의 눈과는 조금 다른 ‘남자’의 눈.
잠시 바라보던 사에키는 씨익 미소 짓더니 뒤돌아 안절부절 못 하는 그녀의 머리에 춉을 날렸다.
“됐어, 안심해. 방해 같은 거 안 할 테니까. 난 간다. 오늘 일 바쁘고.”
“아, 그런 게 아니…….”
“그럼 재밌게 보내라고.”
탁, 문이 닫히고 사에키는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머리를 감싸 안은 채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아아, 어떡해! 완전히 오해받아 버렸다!”
“그러게.”
“그러게, 가 아니잖아, 하리!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에엑?”
“됐어, 사에키 그 녀석, 너 놀리는 거라고. 늦었다. 바래다줄 테니까 빨리 갈 준비나 해.”
오해받은 건, 그녀가 아니라 이 쪽인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오해가 아니겠지만.
그녀를 그녀의 반으로 돌려보낸 후, 하리는 흘끗, 창밖을 곁눈질로 봤다. 운동장 끝 쪽에 사에키가 보인다. 끝 쪽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언뜻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사에키는 뒤돌아 정문을 빠져나갔다. 타이밍 좋게, 그녀는 가방을 챙겨 다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해받은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그러네.”
가벼운 하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막 교실 문을 나서려는 하리를 가로 막았다.
“아, 정말! 하리, 진지하게 대해! 이쪽은 큰일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진지하게 아니래도?”
“아냐, 정말 그거 아무리 봐도 오해한 거잖아! 어쩌지……내일 찾아가서 그런 거 아니라고 할까? 그래, 내일 같이 가서 정말 단순한 친구 사이라고 하, 아니……남자 여자 둘이 찾아가서 단순한 친구 사이라고 굳이 변명하는 것도 좀 아닌가? 역시 이상하겠지 그런 거.”
“너 말이야.”
“응?”
그런 말, 내 앞에서 그렇게 막 해도 되는 거냐? 라고 화를 내고 싶어 졌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본 순간 왠지 그럴 맘도 사라져 버렸다.
“남자 여자가 같이 친구사이라고 하는 거.”
“응?”
“너는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야?”
“에?”
얼빠진 얼굴이 된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하고 그녀는 물어 왔다.
“어디까지가 우정이고, 어디까지가 애정이라는 거,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거야?”
“에엣?”
“친구랑 연인의 경계라는 거, 너는 알 수 있어?”
“하리?”
“남자 여자 둘이 찾아가서 그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다니, 그럼 우리는, 대체 뭐인 거야?”
이런 게 ‘친구’일 리가 없다. 이렇게 아픈 게 정말 ‘친구’일 리가 없어. 하지만 그녀는 ‘친구’라고 부른다. ‘친구가 아닌’ 얼굴을 하고, 웃으며 ‘친구’라고 한다.
“하리……무슨 일 있었어?”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지금은 그런걸 원하는 게 아니야. ‘친구’를 원하는 게 아니야.
“됐어. 미안, 나 갑자기 볼일 생겨서. 오늘은 혼자 가는 게 좋겠다.”
“아? 으…응…….”
“미안, 갑자기. 늦었는데 조심해서 들어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내일 모레 보자고.”
“응…잘 가, 하리.”
스쳐 지나치며 교실을 나선다.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에키에게 연락이 온 것은 그날 밤늦게의 일이었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늦게.”
“하리야. 너, 그 녀석, 좋아하냐?”
스트레이트. 갑작스런 질문에 하리는 머뭇거렸다.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간다.
“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 바보냐?”
“나 말이야.”
애써 꺼낸 말을 가로 막으며 사에키는 말했다.
“아무에게도 얘기한적 없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그 녀석을 찾고 있었어.”
“…….”
“만나서 기뻤어. 겨우 만났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허공을 응시하며 말하던 사에키가 돌연 하리를 직시했다. 그 눈은, 아까 학교에서의 눈이었다.
“아무한테나 넘겨 줄 생각 없어.”
“뭐야 그건.”
아무한테나, 라니.
“그게 다야. 밤늦게 불러내서 미안했다.”
자기 할 말만 끝내곤 사에키 테루는 돌아가 버렸다.
아무한테나 넘겨 줄 생각 없어, 라니……뭐야 그거. 바보냐. 어차피 그녀석이 보고 있는 건 내가 아닌데.
“정말 어쩌란 거야.”
한숨이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그 후로 직접적으로 사에키와 만나는 일은 없어져 버렸다. 그녀는 조금 의아해 했지만, ‘싸웠어.’라는 한마디로 무마시켜버렸다. 싸웠달까, 멋대로 선전포고 당한거지만.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덧 졸업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사에키에게서 일방적인 연락을 받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녀석을 잘 부탁한다.’
웃기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을 볼때마다 테루가! 하면서 징징대는걸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힘들어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는게 힘들었다. ‘잘 부탁한다’는게 진심이 아니란 것 정도는 하리도 알 수 있었다. 너무 일방적이라 맘에 안 들어.
그리고 졸업식이 왔다.
“그렇게 말해놓고선.”
사에키는 이미 등대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잘 부탁한다는건 오늘을 위해서였냐.
등대에 기대 하리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한다, 하고 멍하게 있는데, 그녀가 오는게 보였다.
그래. 나라고 아무한테나 넘겨줄 마음은 없지. 어떻게 될지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역시 데리고 간다고 하면 그날의 바다가 좋겠지.
하리는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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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루X데이지 친우기반 팬픽
테루X데이지 친우애정 기반 팬픽.
...................이긴 한데..................................................................
본심 상대를 카츠미로 설정했는데
내가 카츠미를 너무 좋아하는 낰ㅋㅋㅋㅋ멐ㅋㅋㅋㅋㅋ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알 테루는 짝사랑하는 남자가 되어버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루보단 카츠미한테 포커스가 더 맞춰져있는게 함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타 포함되어 있으므로 주의바랍니다.
어린 시절.
잠깐이었지만 만났던 길 잃은 소녀는 그 후로도 영원히 마음속에 소중히 남아 있었다.
그 후로 10여년이 지나도록 다시는 만나지 못했지만...그녀는 자신만의 인어공주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일 뿐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아니,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었다. 수 많은 여자들을 봐왔지만 하나같이 생각나는건 그 어린 소녀의 미소 뿐. 목소리도, 얼굴도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미소만은 기억한다.
“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서.”
입맞춤 후, 소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그 소년이 충분히 자란 후에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자란만큼, 세월은 흘러 정말로 그때의 그 기억이 정말 있었던 일인지조차 혼돈될 무렵-그때의 그 소녀가 정말로 인어는 아니었을까하고 아련히 생각할 무렵, 만나버린 것이다. 그 소녀와 똑같이 미소짓는 여자를.
사에키 테루 15세. 고등학교의 입학식 날, 그는 정말로 다시 만나버린 것이다. 그때의 그 인어공주를.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어느새 1년, 그녀도 자신도 2학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혹시나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몇 번 그녀를 떠본 결과, 역시나. 테루는 두가지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첫 번째, 그녀는 틀림없이 어린 시절 만났던 자신의 인어공주다.
그리고 두 번째, 그녀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결론을 낼 때에 테루는 추지도 못하는 춤이라도 추고싶은 심정이었지만, 곧이어 두 번째 결론을 낼 즈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평소의 2배나 강한 춉을 날리고 말았다.
힘 조절을 안 한 춉을 정통으로 머리에 맞은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바라봤지만, 장난하나?! 누군 10년이 넘도록 이름도 모르는 어린 소녀를 기다려왔건만 어디의 누구는 그냥 맘편히 잊어버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평소보다 과하게 그녀에게 틱틱대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어지는 자신을 느낀다. 그래, 옛날을 기억 못하는게 대수인가? 이제부터 더 좋은 기억을 만들면 되지 않겠어?
그런데 뭐야 저 녀석은.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던 사에키 테루는 고등학교 입학하여 그녀를 다시 만난지 1년 후, 경악할만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왜 다른 녀석 옆에서 저렇게 행복한 듯이 웃고있는거야.
자신의 옆이 아닌, 다른 남자의 옆에서 너무나도 기쁜듯이 미소짓고 있는 그녀를.
“시바 카츠미.”
“시바 카츠미?”
도서실에서 둘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던 그녀와, 정체불명의 남학생을 발견하자마자, 테루는 참지 못하고 달려가 꽤나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던 하리야 코우노신을 끌어와 몰래 숨어, 저 남자 도대체 어떤 녀석인지 아냐고 추궁해버린것이다. 시큰둥한 하리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조금 생소했다.
“그래. 요즘 들어 꽤나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 상승인 모양이야.”
“요즘 들어?”
“아아, 요즘 많이 부드러워졌거든.”
“요즘...그럼 예전엔 안그랬단 말이야?”
아까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하는 모습을 보아서인지 그렇지 않은 건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모두 피해다녔지. 풍기는 분위기가 장난이 아닌데다 소문도 있었고.”
“소문?”
“중학교때 누군가를 팼다나, 뭐 그런 소문이야.”
“뭐어야 그런 소문 쯤 누구라도 한두개쯤 있다고.”
원래 고등학생 쯤 되면 한가락 한다, 하는 남자들은 보통 소문이 한두개씩 따라다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대개는 허무맹랑하거나 지위파악이 어려웠기 때문에, 들어도 그러려니 할 뿐이었지만.
“그렇기야 하지만 본인이 입 꾹다물고 무게 잡고 있으니 모두 다가가기 힘들어했지.”
“흐음.”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같은 녀석이었지.”
“과거형인데 그거.”
“아아 예전부터 알고지내긴 했거든.”
이 녀석의 발은 어디까지 넓은 건지, 여전히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있는 하리를 바라보며 테루는 생각했다. 하리는 꽤 성미가 까다로워보임에도 어지간한 남자애들과는 사이가 좋았다. 그런 녀석이기에, 거리낌 없이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요즘 들어 많이 풀어졌어 분위기가. 다 그녀 때문이라고 주위에서 수군거려.”
“저 녀석 말이야?”
어느샌가 도서실에서 고개를 파묻고 잠을 자버리는 시바 카츠미의 곁에서 익숙한 듯 책을 읽고 있는 그녀를 가리키며 되묻자, 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녀랑 같이 다니는게 보이기 시작한 후로 변했거든. 야구부에도 들더니 이젠 사람 무리에 섞여 있는 일이 잦아졌어. 예전엔 절대로 혼자였거든.”
“흐응...”
“그래서 본인들은 부정하지만 다들 사귀는 거라고 인식하고 있어. 그녀, 야구부 매니져이기도 하고.”
“그런가.”
뭐야 모르는 새에 야구부 매니져까지 하고있었던 건가. 하리의 대답 내용 중에서 유독 반가운 부분이 ‘본인들은 부정하지만’ 부분이었다.
“본인들은 모르지만 말이야, 저렇게나 둘이서 있을 때 풀어져있는게 한눈에 보이는데 부정한다고해서 누가 믿겠어. 다들 거의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모양이야. 만약 정말 지금 사귀는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는 현실이 된다고. 그래서 그녀,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 있는데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에엑? 저 녀석이 인기?”
믿을 수 없는 하리의 발언에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쳐 버렸다. 조용한 복도에 자신의 목소리가 울리는걸 느끼며 테루는 아차 싶었다. 오늘도 겨우 따돌리고 온 여자 무리들인데 여기서 이렇게 들켜버리면 곤란하다.
그나저나 저 녀석이 인기라니, 말도 안돼, 저렇게 어벙한 녀석이 인기 있단 말이야?
“그래. 미즈시마 히소카같이 미인은 아니지만 친근하고 귀여운 느낌이라고 평이 좋아. 하지만 뭐, 저렇게 암묵적으로 임자가 정해져버리니까.”
“말도 안돼.”
“시바 쪽은 인기는 있지만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가봐.”
자, 됐지? 난 그럼 연습하러 간다, 라며 하리는 이내 음악실로 사라져버렸고, 이내 잠에서 깨어난 시바 카츠미와 함께 도서실을 나오려하는 그녀를 깨닫곤, 테루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아아, 뭐하고 있는 거람, 오늘은 빨리 가서 일의 준비를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테루군, 큰일이네.
일과 학업을 동시에 해내야한다는 걸 알자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던 게 떠오른다.
아아, 정말 큰일이야.
이 상황은 뭔가.
심각하게 자신에게 되물어봤자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눈앞에는 아까의 덩치 큰 시바 카츠미라는 녀석과 플러스, 그녀석의 팔을 꼭 붙잡고 행복한 듯이 베시시 웃고 있다가 날 보고 놀란 그녀.
“아…….”
입에서 목소리가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조금 볼일이 있어서 왔었는데…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황급히 뒤돌아서 집으로 발을 향했다.
뭐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사고 가게를 가는 길에, 그녀의 집 쪽으로 돌아갔을 뿐인데, 마주쳐버렸다.
정면으로. 딱.
저건 연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잖아. 아니 아직까지 안사귄다는 말을 믿는 녀석들이 더 바보다. 아아 그래 난 바보다. 사에키 테루, 바보.
지금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걸 보니 정말 미친게 아닌가 싶다.
“여보세요?”
“아아, 나. 아까 말인데...”
무슨 변명이라도 해볼까하여 전화했건만 그녀는 침착하게 내 말을 끊고 있었다.
“사에키군, 사실은 말이지.”
“스톱.”
전화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알고 있으니까...들어줄게.”
해변에서 만나기로 한 후, 다시 집 밖으로 나오며, 가슴이 뛰는걸 느꼈다. 좋게 두근두근이 아니라, 긴장으로 인해서 쿵, 쿵, 하는 식으로. 진짜 그녀의 입으로 진상을 듣게 된다면 심장마비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에키 테루, 17세.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차여서 심장마비로 사망.
이 얼마나 멋없는 사인이란 말인가. 그렇게는 안되지. 바다에 도착한 테루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말 그대로, 알고 있는 거다. 이미 알고 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잠시 후 도착한 후 직접 그녀의 목소리로, 생각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실을 들은 직후 온 충격은 전혀 작지 않았다.
“사실은…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래.”
이미 알고있어.
하지만...
“너도 사실은 알고있었던거지? 나, 일이다 뭐다해서 많이 바쁘고…그래서 여러 가지 신경써주지 못하고…….”
하지만…….
“귀여운 아이를 위해서다. 내가 인심 쓰지. 무슨 일이 있으면 상담해 줄테니까. 하네가사키의 프린스께서 도와주시겠다는 말이야.”
하지만
기억해주길 바랬어.
그때의 소년을 기억해주길 바란 것은,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테루군……고마워, 테루군은 정말이지 최고의 친구야!”
“바보.”
와~하고 달려드는 그녀에게 콩, 하고 춉을 먹인다.
그녀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한 짐 덜었다, 라는 듯이.
최고의 친구라는 말을 듣고싶은게 아니었어.
씁쓸한 미소만이 나왔다.
달그락 달그락, 고급은 아니어도 고상한 커피 잔이 잔뜩 쌓여 아슬아슬하게 소리를 낸다.
아까부터 저 상태다. 아니, 오늘 하루 종일.
그녀는 평소와는 확연히 다르게 침울한 얼굴로 식기들을 나르고 있었다.
슬슬 주의를 주지 않으면…….
식기의 물기를 닦으며 테루는 생각했다. 오늘의 그녀의 상태는 심각해보였다. 얼마 전에 “나 역시 안되는 걸까?” 라며 울먹였던 일이 있었던걸로 보아, 오늘 또 무슨 일이 있었나 보지, 하고 짐작할 뿐이다.
그 날 이후 반년 정도가 흘렀다. 이제 3학년으로 진급했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번에 시바 카츠미라는 그 녀석은 고시엔에 스타팅 멤버로 가게 되었다나. 슈퍼 루키-라는 소문. 랄까 학년 상 루키라는 단어는 안 맞지만, 사정이 사정이라, 중간에 입부한 것 치고는 엄청난 결과라고 주위에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대학수험전이랄지, 그런 느낌이라 스트레스도 서로 많이 받는 모양인지, 최근 들어 부쩍 불안한 모습을 그녀는 보이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저렇게 멍한 얼굴로 산처럼 쌓은 식기를 나르다가 잘못하면...
와장창
아-역시...대참사.
“와아앗, 죄, 죄송합니다앗!”
그녀는 황급히 산산조각난 커피잔-아니 이제 그저 유리조각일 뿐인 것-들을 손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아, 잠깐, 그렇게 대강 하다가는...”
“아얏!”
...아아, 두 번째 역시나. 난잡하게 흩어져있는 유리 조각들 위로, 붉은 핏방울이 방울진다.
상당히 심하게 베였는지 흐르는 피의 양이 조금 많아보였다.
“바보, 치우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일단 거기 앉아.”
“엣? 하지만...”
“그런 상태로는 아무 도움도 안돼.”
우우...한층 더 침울해진 얼굴로 그녀는 의자를 빼어내 앉았다. 테루는 구급상자를 가져와 그녀의 앞에 앉았다.
“베인데, 내밀어.”
“미안해, 테루군...”
“지금은 쓸데없는 말 말고 어서 손이나 줘.”
시무룩하게 내밀어진 손을 잡고 소독을 한다.
슬쩍 본 그녀의 눈에는 조금,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게 소독하는 게 따끔거려서인지, ‘그 녀석’ 때문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조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너 말이야.”
“응?”
“그렇게 괴로우면, 그냥 포기해버려.”
“그…그런…….”
보고 있는 이쪽까지 괴로워진다.
아니, 괴롭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에 더 마음 아픈건지도 모른다.
“됐어. 잊어버려.”
치료가 끝나고 손을 놓으며, 테루는 중얼거렸다.
“응?”
“방금 한 말.”
“…….”
“……조금은 나 자신한테 하는 말이었으니까.”
그녀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내려다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넌 이제 그만 가봐. 시간도 늦었고.”
“아, 하지만 그럴 수는…….”
“됐어, 그런 얼굴로 있어봤자 이쪽만 더 힘들어진다고.”
미안해, 하고 중얼거리며 그녀는 돌아갔다.
끝까지, 울어버릴듯한 표정으로. 집에 가면 정말 울어버릴지도 모르지.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면서 좋아할만한 상대인건가? 그 녀석은?
“윽.”
움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는지 상당히 난폭하게 유리조각을 치우던 손은, 아까의 그녀처럼 붉은 피를 떨구고 있었다.
“그렇게 괴로우면...포기해 버려.”
아까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반쯤은, 자신에게 향한 말.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좋아할 만한 상대인건가? 라는 질문 역시, 반쯤은 자신에게 향해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포기할 수 있으면 진작에 포기했다. 어렸을 적부터 소중히 간직해 왔던 추억과 그리움은 사라져주질 않는다.
정말 어찌해야 좋은 거야?
테루는 한숨을 내쉬며 마치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한 조각조각 난 유리조각들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졸업 날이었다.
물론 미리 졸업장을 받아버린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 자신은 여기에 와 있는 건가.
눈앞의 등대는 그날로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이 보였다.
지금쯤이면 졸업식도 끝났겠지.
자신이 아는 그녀라면, 십중팔구 졸업식이 끝난 후 이 곳으로 올 것이다. 비록 그것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 채로라도.
그렇다고 해도,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막연히, 테루는 생각했다.
비록 그녀가 이곳으로 온다고 하더라도, 찾는 것은 자신이 아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 없다. 지금 이 장소는, 사에키 테루를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테루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날, 그녀가 웃던 그 바다로.
내가 여길 떠나면, 곧 그녀는 이곳으로 오겠지, 시바 카츠미도 이곳으로 올까?
여태까지 봐 온 그라면 분명 오겠지.
그녀는 어떻게 할까.
날 기억해줄까?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그녀를 생각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어느새 도착한 바닷가엔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좋은 파도가 치고 있네.”
하늘을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 쯤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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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X주인공 친우기반 팬픽
시바X데이지 친우애정 설정 팬픽
본심 상대는 사에키 테루
오리지날 설정 추가 및 친우스토리 네타 포함 되어있으므로 주의요망.
정말 맹세컨대 다른 이유 없이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지나가는 길에 들러본 거였다. 그런데 그런걸 목격할 줄이야…….
카츠미는 윗몸일으키기를 하다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생각했다.
언제나처럼 조깅 후, 집에 돌아가던 길-카츠미는 갑작스레 같은 학교의 여학우-라고 별로 관심 없는 것처럼 표현하지만 사실은 지대한 관심이 있는-의 집 쪽으로 몸을 돌렸던 것이다.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반대편에서 이쪽을 향해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 언제나의 귀여운 모습으로 팔랑팔랑하게 들어오는 그녀와, 그 옆의 또 다른, 남자, 의 모습.
“저 녀석은…….”
아아 누군지 알고 있다. 전교 여학생들의 왕자님이라고 칭해지는, 사에키 테루.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아 잘은 모르지만 얼굴은 아는 녀석이다. 랄까, 여자들이 복도 같은 곳에 우글거리는 중앙을 보면, 언제나 틀림없이 그곳에 있는 녀석이기에, 얼굴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놀라운 것은 언제나 미소로 여자를 대하던 녀석이 지금, 그녀에겐 머리에 춉을 날리는 등, 상당히……뭐랄까-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즐겁게 얘기를 하며 다가오다 드디어 자신을 발견하곤 매우 놀란 그녀의 모습에, 카츠미는 조용히, “미안, 방해한 모양이네.” 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버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끝까지 못 들었지만, 사에키 테루는 잠시 놀란 것 같더니, 이내 그녀에게 오늘은 즐거웠다고 다음에 또 부르겠다며, 작별인사를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대로 누워 잠시 회상을 하던 카츠미는 이내 손 바로 옆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보고는 바로 집어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채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바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봐서 그녀도 꽤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보세요.”
“아아, 카츠미군! 아까는 말이야, 저기―”
“아까는 미안. 할 말이 있는데 혹시 만날 수 있을까?”
“아, 응! 어디서 만날까?”
예전에도 가끔 만나던 해변으로 약속을 잡곤, 바로 카츠미는 집을 뛰쳐나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한참을 기다렸다. 너무 빨리 뛰어온 탓이기도 하지만, 반은 기분탓인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저쪽에서 그녀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도착해 잠시 망설이다가 조금 울 것 같은 얼굴로, 카츠미군-사실은 말이야, 하며 사정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정말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어.
카츠미는, 마음 한구석에서 그게 자신이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 꿈틀대는 게 느껴졌지만, 꾸욱 눌렀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어, 마음과는 상당히 상반되는 말을 내뱉었다.
“알았다. 협력하지.”
“에?”
놀란 그녀의 얼굴을 보며, 조금은 진심을 흘려버렸다.
“어디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까…그런 얼굴 하지 마. 네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아.”
자신의 말을 들은 그녀가 이내 밝게 웃으며, “고마워. 카츠미군은 역시 좋은 친구야!”하며 친구 선언을 끝내자 카츠미는 뭔가 정신이 멍해짐을 느꼈다. 아아, 좋은 친구도 될 수 있는 거구나 나는, 이라는 기분으로 그녀를 집에 바래다 준 뒤, 다시 한 번 정신없이 트레이닝을 한 후-같은 학교의 히카미 이타루가 짜준 트레이닝 메뉴는 전혀 따르지 않은 채로-대강 씻은 뒤 그대로 침대로 직행해버렸다. 더 이상의 복잡한 생각은 무리였다. 일단 내일 학교에 가서 부활시간에, 그녀를 본 뒤에 더 생각해보자.
그녀는 야구부의 매니저를 맡고 있었으므로, 수업이 끝난 후엔 야구부로 직행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같은 반은 아니어도 카츠미는 거의 매일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월 3째 주 주말에는 운동계는 필히 와야 하므로 아주 못 보더라도 한 달에 한번은 반드시 그녀와 얼굴을 대면 할 수 있었다.
사에키 테루.
왜 하필 사에키 테루일까.
다음날, 카츠미는 수업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문무재색 겸비, 학교 제일의 왕자님-
카츠미는 자신의 반 여학생들이 떠들어대던 말을 떠올렸다.
그랬다. 사에키 테루, 학교의 아이돌이라면 아이돌. 여학생들의 우상.
학교의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제일 많은 남자를 꼽으라면 당연 첫 번째로 나오는 이름이 바로 사에키 테루인 것이다.
자신이 아는 그녀는 다른 여자들처럼 그렇게 경박한 여자는 아니었다. 모든 이의 우상을 좋아하는 이유가, 비단 재색 겸비는 아니겠지만……문이 문젠가……새삼스레 카츠미는 펴놓은 교과서를 내려다보았다. 흘끗, 옆의 아이를 보니 펴놓은 곳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보아, 역시나 수업 시작 후 아무 곳이나 펴놓은 게 천운으로 마침 그곳을 공부 중이었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던 듯하다, 팔락팔락, 옆의 아이의 페이지에 맞추어 교과서를 폈건만 역시나 전혀 교과서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선생님의 수업에 한번 귀 기울여 봤지만, 제대로 우리나라의 말로 얘기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문제다. 문은 무리다. 포기하도록 하자. 하지만 그게 그녀의 취향이었다고 치면, 자신은 정말 희망이 없는 걸까, 하고 고민이 조금 되기도 했지만,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모양이다. 아무리 진지하게 수업을 들어봤자, 한참 뒤쳐진 진도는 쫓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라면 체육은 자신 있다는 걸까.
만에 하나, 그녀가 사에키 테루를 좋아하는 이유가 얼굴이라면…….
아, 이길 수 없을지도.
비록 그런 쪽에 관심이 없는 카츠미였지만 그래도 사에키 테루라는 남자가 꽤나 잘생겼다는 사실은 자신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여학생들에게 그렇게나 인기가 많은 거겠지.
카츠미는 알아볼 수 없는 교과서에서 눈을 떼고 다시 창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빠졌다.
사실 시바 카츠미 자신도 하네가사키 학원의 여학생들에게 손꼽힐 정도의 인기인이라는 사실은 본인이 모르고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테루와의 다른 점은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한다는 점일까.
물론 전혀 그 사실을 모르는 카츠미는 쉬는 시간에 그녀의 반 근처에서 돌아다니며 사에키 테루를 찾았다. 물론 멋지게 ‘협력하지’, 라고는 했지만 그녀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에게 그녀를 떠맡겨버릴 수 는 없지 않은가, 혹시 나쁜 녀석일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사에키 테루라는 인간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랄까 좋은 녀석이라고 해도 당장에 넘겨주지라는 기분도 아니지만.
그 후 카츠미는 한무리의 여자 무리들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었고 당연 그 가운데에서 사에키 테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괜히 여자에게 둘러싸여있는 사에키 테루에게 다가가 슬쩍 부딪친다던가, 점심시간에 누군가에게서 달아나고 있는 듯 한 사에키 테루를 몰래 쫓는다던가, 괜히 가던 길을 방해한다던가, 했다. 도중에 시바 카츠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소위 스토킹이라고도 불리는 행위라는걸 깨달아버렸지만, 이미 시작한 이상 그만둘 수 도 없기에 수업이 전부 끝날 때 까지 쉬는 시간이면 사에키 테루의 근처에서 그를 주시했다.
결과적으로는 사에키랑 같이 있는 모습을 보이자 갑절은 더 되는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버린다던가, 해버렸지만…….
결론은 사에키 테루는 자신이 원했던 대로 나쁜 남자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아아 자신이 사에키 테루가 나쁜 남자라는 것을 원했건만 그것이 아니었다는 걸까, 나쁜 남자가 아닌걸 자신이 원했던 걸까.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카츠미는 종례를 맞이했다.
예상대로 수업이 끝난 후 야구부에 가 있자, 얼마 뒤 그녀가 나타났다.
트레이닝 중이고, 감독이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오지는 못했지만 반갑게 눈인사를 하곤 매니저의 잡무를 하러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카츠미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뒤의 부활동은 최악으로 남았다. 연습 시합에서 카츠미는, 4번의 파울에 어이없이 아웃당하는 등, 터무니없는 실수들을 연달아 저질러버렸다. 감독은 화가 나서 그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보며 기운이 쭈욱 빠져버렸는지-
“가서 머리나 식히고 와라, 카츠미.”
하고 내뱉곤 다시 시합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무슨 일 있어? 카츠미군?”
후우-하며 야구 배트를 내려놓자, 그녀가 다가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차마 그래, 바로 너 때문에!!!라고 소리 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카츠미는 묵묵히 그녀를 내려다 봤다.
“…카츠미군?”
“―하굣길에.”
“응?”
“같이 갈 수 있을까? 네가 다른 녀석-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녀석과 약속이 있다면 하는 수 없지만.”
그녀는 조금 놀란 듯 카츠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으응, 오늘은 테루, 바쁘다고 한걸. 상관없어 같이 가자.”
거리낌 없이 테루, 라고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보며 카츠미는 씁쓸한 마음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동이 끝나고 하굣길, 카츠미는 조용히 걷다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넌지시 그녀에게 물음을 꺼냈다.
“그 녀석……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응? 그 녀석, 이라면 테루?”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가던 발걸음을 우뚝 멈춰서버렸다. 갑작스런 그녀의 침묵에 카츠미는 조금 당황해서는 그녀를 봤지만, 그녀는 뭔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치 오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조금은 몽롱한 눈으로.
“어이?”
“약속했으니까.”
이내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녀는 카츠미에게 말했다.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까.”
그 후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
카츠미는 보이지 않게, 좌절했다.
좌절.
이래서야 절대로…절대로―승부가 안된다.
사에키 테루는, 그녀의 어린 시절의 왕자님이었다. 현재는 학교의 아이돌이지만, 그녀 혼자만의 왕자기도 했다. 물론 사에키 테루도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카츠미는 그런 일이 자신에게 있었다면 곧 죽더라도 절대로 잊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사에키 테루가 그것을 기억 못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지만, 카츠미는 알 수 있었다. 그 녀석은 분명히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까 그녀를 가만히 두고 있는 거다.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카츠미는 생각했다. 이래서야 가망성은 없다. 절대로. 카츠미는 네거티브한 기분에 사로잡혀 버리는 자신을 용납할 수 가 없었다. 그녀가 옆에 있으니까. 이러다간 그녀에게 화를 내고만다. 아니 화를 낸다고 해도, 뭐라고 내야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왜 어린 시절에 길을 잃고 자신이 사는 동네로 오지 않았냐고 화를 낼까. 아니 말도 안돼. 아니지, 만약 그녀가 길을 잃고 자신이 있던 곳으로 온다고 쳐도, 그 시절의 자신은, 그저 야구밖에 모르는 꼬맹이였던 것이다. 울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다, 만약 울음을 그치게 만든다고 해도, 장소적으로 자신은 이미 사에키 테루에게 졌다. 그라운드 한가운데서 ‘너는 인어야?’라고 할 수도 없고,
‘너는 그라운드의 요정이니?’
전혀 무드 따위 없다.
일단 그런 식으로 그녀의 주의를 끈 후에는? 뭘 어째야 하는 거지?
‘이 야구빠따에 맹세할게, 다음에, 반드시 다시 만나기를.’
절대 아니다. 뭔가 아니다.
그래 그냥 인정하자. 만약 그때 어릴 때의 그녀가 만약 자신에게 온다고 쳐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너 왜 울고 있냐.’
‘말 못해?’
‘이상한 녀석이네.’
‘…그만 울지?’
‘…….’
몇 시간 후.
‘다 운거야?’
‘길 잃었어?’
‘집 어딘데?’
‘거기라면 저쪽.’
‘…혼자 못 가?’
‘……귀찮게 구는 녀석이네.’
그러고나서 데려다 주고 그 일을 잊는다. 라는 가능성이 절대로 높다. 절대로 이런다. 아니 어쩌면 같이 어울리던 모토하루가 오히려 그녀의 왕자로 남아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녀에게 기억 속의 소년으로 남는 일은 절대로 없겠지.
카츠미는 어린 시절의 자신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파악을 마친 뒤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의 집 앞, 그녀는 이상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응?”
“카츠미군, 오늘 이상해. 멍~해. 아니 평소에도 좀 그러긴 했는데 오늘은 좀 더 이상해!”
“…….”
평소에도 그러긴 했던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이만.”
“카츠미군!”
갑작스레 옷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카츠미는 다시 빙글 돌아 그녀를 바라봤다.
“카츠미군, 정말 이상해. 혹시 나한테 화났어?”
“전혀.”
“…그럼 왜 그러는 거야?”
“……그냥 오늘은 트레이닝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무렇게나 말을 하자 놀랍게도 그녀는 납득했다. 아마 카츠미가 감독에게 혼나서 풀이 죽어있었던 것으로 착각한 듯싶었다.
“아, 그, 그렇구나. 미안 카츠미군…내 생각만 해서― 괜찮아 내일은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생글, 웃고는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여자를 어찌해야 합니까, 신이시여.
카츠미는 평소엔 손끝만큼도 믿지 않던 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심정으로 공원으로 발을 돌렸다. 조깅이나 해야겠다.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수학여행 때는 어쩌다보니 토도랑 한편이 돼서 그녀와 사에키 테루의 콤비와 베개싸움을 하게 되기도 하고―카츠미는 그때를 회상했다. 좀 감정을 많이 담아 사에키 테루에게 베개를 던져댔던 것이 기억났다.― 그 후에 학생주임을 피해 숨다 우연히 좁은 구석에 그녀와 함께 숨어버리게 됐던 일이라던가, 3학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 오지 않은 사에키 테루를 걱정하는 그녀를 위로한 일이라던가, 새해 신사참배를 가던 그녀와 사에키 테루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숨어버린 일이라던가. 그러다가, 3학년 졸업이 가까워질 무렵, 사에키 테루는 사라졌다. 부쩍 그녀의 우울한 모습을 보게 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있잖아, 카츠미군, 역시 내가 모자랐던걸 까나.’
대답은 절대 아니, 였지만. 차마 그녀의 앞에서 널 좋아하지 않는 그녀석이 바보다, 라고 할 수 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렇지 않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걸로 그쳤다. 그녀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줄때면 고양이처럼 눈을 감고는 헤헤, 하고 조금은 슬픈 듯이 웃었다.
그리고 졸업식이 다가왔다.
졸업식이 끝난 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뻔했다.
그렇기 때문에, 카츠미는 먼저 그곳의 입구 즈음에 숨어 기다렸다.
예상한 대로, 사에키 테루가 왔다. 녀석은, 조금은 무거운 결심을 한 듯, 등대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 버렸다.
고민.
그녀를 좋아했다.
누구보다도 소중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소원대로, 해주는 편이 좋은걸까 아니면.
부서지고 깨지더라도, 그녀에게 말을 해버릴까.
이제 좀 있으면 그녀가 온다.
카츠미는 조용히 그날의 바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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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나서의 후기지만..
여기에 베이스는 카츠미 친우고백 엔딩이며, 본심 상대는 사에키 테루이며,
또한 더해진 설정은 주인공이 어렸을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입니다.
...아 뭐야 이 미약한 끝은ㅠㅠㅠ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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