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X데이지 친우기반 팬픽
하리X데이지 친우애정기반 팬픽.
본심상대는 역시 사에키 테루.
만만한게 테루지.
하네가사키의 음악실에서 하리야 코우노신-통칭 하리-는 만드는 중인 곡을 듣고 있었다.
“음, 좋아.”
곡을 만드는데는 모티브랄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것은 요즘 부쩍 가깝게 지내는 한 여자아이가 담당하고 있었다. 본인은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기타의 이름도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녀석과 함께 있으면 여러 가지로 즐거웠다. 지금 듣고 있는 곡도 그녀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 했으리라. 꽤나 성공적인 음률을 들으며 하리는 혼자 만족했다.
“하리-.”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생글생글한 눈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며 하리는 끼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오오, 좋은 때에 왔네, 너.”
“응? 좋은 때? 뭐 듣고 있어?”
“그때의 그 곡 거의 완성이야-이리와.”
이어폰의 한쪽을 건네자, 그녀는 하리의 옆에 와 앉으며 귀에 이어폰을 꼈다. 줄은 그다지 길지 않아, 자연스레 둘은 가깝게 붙어 앉는 형식이 되어버렸다.
“아아, 멋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음을 즐기듯이 조금 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 열어둔 창문에서 불어온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려 하리를 간지럽혔다. 하리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지. 녀석은 너무 경계가 없어. 언제나 긴장하는 것은 자기 혼자 뿐.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봤다.
“에…….”
워낙 가깝게 앉았던 터라 거의 코를 맞대고 있는 지경이었다.
그녀의 눈이 자신을 보는 게 느껴졌다.
“하리-…?”
입술이 벌어지며 자신의 이름이 들려왔지만 그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리가 보고있는건 그저 그 벌어진 입술-…….
“어이-너네 둘, 뭐하는 거야?”
“에엑!”
난데없는 제 3자의 개입에 하리는 크게 놀라 벌떡 일어서 버렸고, 그 결과 그녀가 같이 끼고 있던 다른 쪽의 이어폰이 귀에서 거칠게 빠져버려 그녀마저 크게 놀라버렸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사, 사에키. 너였냐.”
“으…아파…갑자기 일어서버리면 어떡해, 하리-.”
각각의 불평이 나오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에키 테루는 이미 이어폰이 빠져버려 더 이상 방해물이 없는 그녀와 하리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앉아버렸다.
“뭐하고 있었던 거야 둘이서 그렇게 가까이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고, 둘이 그런 사이였던 거?”
사에키는 학원내의 평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태도로 짓궂게 하리에게 말했다. 예전부터 꽤나 친분이 있던 그는 자신이 재학 중인 하네가사키의 프린스라고 불리고 있었다. 자신과 그녀의 앞에서는 그런 이미지는 전혀 상상되지 않지만, 다른 이의 앞에서는 180도 바뀌어버리는 태도를 하리는 여러번 목격하고 있었다. 한가지 의외인 점은, 남자 친우인 자신 말고도, 여자인 그녀 앞에서 마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랄까, 여자아이에게는 예의 왕자님 모습을 관철하는 그를 봐오던 하리로써는 크게 의외일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
“농담하지 마, 테루.”
그녀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사에키는 수도로 춉을 날렸다. 그녀는 부산스럽게 피하며 역공을 날렸고, 사에키는 그 손을 잡아 다시 한 번- 하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둘을 가만히 지켜봤다.
자신이 그녀를 좋아한다, 라는 것은 아무리 연애 쪽에 민감하지 않은 하리 자신도 인정하고 있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까처럼 심장이 고장 난 것같이 두근거린다거나,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하진 않으니까.
그녀도, 자신이 단순히 친구일 뿐이라면 데이트를 한다거나 할 때 그만큼 무의식적으로랄지, 들러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일까.
그녀가 지나치게 자신을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부터? 아니면,
사에키와 함께 3명이서 어울리기 시작한 후부터?
3명이서 어울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부러 안 어울린 것은 아니고, 단순히 하리 쪽에서 그녀와 사에키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에키는 여자라면 언제나 피하려들었으니까.
“안녕, 테루.”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던 사에키에게 놀랍게도 이름을 부르며 접근했을 때, 하리는 사에키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나오는 건가, 그 왕자님 연기-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또 다시 하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에키는 자신을 대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태도로 그녀를 맞이한 것이었다.
“어, 뭐야-너였어? 놀랐잖아.”
“응, 하리도 오스-둘이 뭐하고 있었어?”
둘이 이미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안 후 부터는 사에키 쪽의 특성 때문인지, 자연스레 3명이서 어울리는 때가 많아지게 되었다.
사에키와 그녀는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춉을 날리고, 그런 둘을 바보 같다며 놀리고. 하지만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걸 느낀 건 자신뿐일까, 아니면 자신 혼자 엇나가기 시작한걸까.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후부터였을까, 조금씩 3명의 관계에 하리는 위화감을 느껴버린 것이다.
“너…….”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처음으로 마음속에 생긴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다음의 라이브 일정이 잡혀, 신이 나서 그녀에게 말해주려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을 때, 하리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자신과 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마치 연인처럼 함께 걷고 있는 그녀와 사에키였다.
평소처럼 그녀의 반응이 ‘어? 하리-오스, 무슨 일이야?’ 라던가 였으면 지금처럼 화가 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가득한 감정은 분명히 ‘당황’이었다.
“하리야? 너……”
사에키의 놀란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풀고 다가오려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 녀석한테 볼일이 있었을 뿐. 다시 연락 할 테니까.”
하리는 뒤돌아 집으로 뛰었다.
라이브를 대실패 한 후에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실망감, 그리고 상실감-이 몰려왔다. 이곳에서 도망쳐봤자, 그 후에 올 상황은 바뀌지 않을 텐데.
일단은 이 장소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적어도, 적어도 ‘사에키 테루’가 없는 장소로 가고 싶었다.
집에 도착 한지 좀 지나서, 머리가 식었는지 오히려 달아올랐는지, 하리는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간지 얼마 채 되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하리-?”
“응, 나. 아까 일, 들려줘.”
마음을 다 잡고 말하자, 그녀가 제대로 얘기해줄 것이 있다며 직접 만나자고 해왔다.
순간이동을 한 기분으로 어느샌가 하리는 바닷가에 와 있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정신없이 나와서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었다. 제대로 된 건, 언젠가 그녀에게 주려고 마음먹었던 반지뿐.
“하하, 이제 줄 일도 없겠지만.”
“응?”
실소가 터져 나와 혼잣말을 하자 어느새 왔는지 그녀가 뒤에서 되묻고 있었다.
뒤돌아보자 잔뜩 긴장한 표정의 그녀가 보였다. 아마 하리가 조금이라도 화를 낸다거나 하면 금세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
“…하리. 사실은 나……테루를, 좋아해.”
“…….”
사실 배신감을 느껴야 할 이유따위 없었다. 그녀에게 제대로 고백해 본 적도 없었고, 그녀에게서 ‘좋아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하리가 느끼고 있는것은 지독한 배신감이었다.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화를 내고 싶었다.
다른 녀석, 그것도 사에키를 좋아한다고? 그럼, 도대체 여태까지의 우리는, 아니 나는 뭐였던 거야? 왜 날 그렇게 대했던 거야? 왜 날 ‘착각’하게 만든 거야? 왜 날 혼자 들뜨게 만들었던 거야?
도대체 왜?
하지만, 차마 그럴 수 는 없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싫었으니까.
“그래서…그래서……미안해.”
그녀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과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불안해졌는지 그녀는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
“하리-?”
언제나 하리가 약해지던, 그 눈으로 올려다보는 얼굴. 그것도 눈물을 담은 눈으로, 그녀는 하리를 그렇게 올려다봤다. 묵묵히 바라보던 하리는 그 모습을 보곤, 언제나처럼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흐트러트려 놓았다.
“사과할 필요 없어. 화내는 것 아니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마.”
“하리…….”
“놀란 것뿐이야. 설마 사에키 녀석일 줄은 몰랐으니까-좋아, 알겠어. 응원해 줄 테니까, 제대로.”
점점, 그녀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보인다. 하리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마지막으로, 힘겹게-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 말을 입 밖에 냈다.
“그 대신, 절대로 성공시켜.”
“응!”
사실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음에도, 그녀는 너무나도 기뻐보였다. 눈에 띄게 안도한 얼굴에, 하리는 다시 한 번 실소가 나오는 게 느껴졌다.
“고마워, 하리, 나 정말 힘낼게!”
“그래.”
하지만 끝끝내, 하리의 입은 ‘힘내라’는 말만은 입 밖에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이, 하리야.”
방과 후 정신없이 작곡에 빠져있다 문득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눈앞에는 사에키 테루가 있었다.
“요즘 잘 안보여서 걱정했다구. 기타 가르쳐주던 것도 그만둬버리고, 정말 책임감 없는 녀석.”
앞의 의자에 거꾸로 앉으며 사에키는 하리가 끄적이던 노트를 주시했다.
그녀에게서 ‘고백’을 받은 후, 하리는 사에키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기타를 가르쳐주던 것도 그만둬 버렸고, 만나도 인사정도만 하고, 일부러 찾아가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사에키는 몇 번인가 할 얘기가 있다는 듯, 마주쳤을 때마다 하리를 붙잡으려 했었지만 주위의 친위대들이 가만두질 않아 번번이 실패에 그치곤 했다.
“무슨 일 있었냐?”
여전히 노트만 주시한 채로, 사에키는 물어왔다. 조금 기울은 해가 교실을 노을빛으로 물들인다. 하리는 조그맣게 그다지, 하고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시선은 노트에 박혀있었다.
붉은 빛으로 물든 교실에서 두 명은 조용히 노트만을 주시한 채로.
숨 막히는 몇 분이 지난 후 사에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녀석한테, 무슨 얘기 들었어?”
“……전혀.”
동요를 숨기지 않으려 노트를 주시한다. 하지만 질문과 대답사이의 간격이 이미 충분히 동요했음을 보이고 있었다.
“하리야……너―”
“하리-! 내일모레 말인데―앗?”
드르륵, 기세 좋게 열린 문은 사에키의 말을 가로막고, 힘차게 내뱉은 말은 두 사람의 주목을 이끈다. 문가에는 다름 아닌 그녀가 와있었다.
“에…엣, 저기 테루도 있었네?”
“…내일 모레 둘이서 약속 있는 거야?”
“엣, 아니…그게…….”
“뭐야, 방해한 것 같네.”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모습에 사에키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쓴웃음 짓는걸 바라보며 하리는 노트를 덮었다.
“너도 올래?”
“하, 하리!”
자리에서 일어나 사에키와 마주 본다. 그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건 조금 떠보는 의도.
“별로 상관없다고. 데이트 같은 것도 아니니까. 라이브의 복장 때문에 쇼핑하러 가는 것일 뿐이야.”
“그래?”
사에키는 알 수 없는 눈으로 하리를 바라봤다. 그것은 분명 여태까지의 ‘친구’의 눈과는 조금 다른 ‘남자’의 눈.
잠시 바라보던 사에키는 씨익 미소 짓더니 뒤돌아 안절부절 못 하는 그녀의 머리에 춉을 날렸다.
“됐어, 안심해. 방해 같은 거 안 할 테니까. 난 간다. 오늘 일 바쁘고.”
“아, 그런 게 아니…….”
“그럼 재밌게 보내라고.”
탁, 문이 닫히고 사에키는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머리를 감싸 안은 채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아아, 어떡해! 완전히 오해받아 버렸다!”
“그러게.”
“그러게, 가 아니잖아, 하리!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에엑?”
“됐어, 사에키 그 녀석, 너 놀리는 거라고. 늦었다. 바래다줄 테니까 빨리 갈 준비나 해.”
오해받은 건, 그녀가 아니라 이 쪽인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오해가 아니겠지만.
그녀를 그녀의 반으로 돌려보낸 후, 하리는 흘끗, 창밖을 곁눈질로 봤다. 운동장 끝 쪽에 사에키가 보인다. 끝 쪽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언뜻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사에키는 뒤돌아 정문을 빠져나갔다. 타이밍 좋게, 그녀는 가방을 챙겨 다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해받은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그러네.”
가벼운 하리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막 교실 문을 나서려는 하리를 가로 막았다.
“아, 정말! 하리, 진지하게 대해! 이쪽은 큰일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진지하게 아니래도?”
“아냐, 정말 그거 아무리 봐도 오해한 거잖아! 어쩌지……내일 찾아가서 그런 거 아니라고 할까? 그래, 내일 같이 가서 정말 단순한 친구 사이라고 하, 아니……남자 여자 둘이 찾아가서 단순한 친구 사이라고 굳이 변명하는 것도 좀 아닌가? 역시 이상하겠지 그런 거.”
“너 말이야.”
“응?”
그런 말, 내 앞에서 그렇게 막 해도 되는 거냐? 라고 화를 내고 싶어 졌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본 순간 왠지 그럴 맘도 사라져 버렸다.
“남자 여자가 같이 친구사이라고 하는 거.”
“응?”
“너는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야?”
“에?”
얼빠진 얼굴이 된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하고 그녀는 물어 왔다.
“어디까지가 우정이고, 어디까지가 애정이라는 거,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거야?”
“에엣?”
“친구랑 연인의 경계라는 거, 너는 알 수 있어?”
“하리?”
“남자 여자 둘이 찾아가서 그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다니, 그럼 우리는, 대체 뭐인 거야?”
이런 게 ‘친구’일 리가 없다. 이렇게 아픈 게 정말 ‘친구’일 리가 없어. 하지만 그녀는 ‘친구’라고 부른다. ‘친구가 아닌’ 얼굴을 하고, 웃으며 ‘친구’라고 한다.
“하리……무슨 일 있었어?”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지금은 그런걸 원하는 게 아니야. ‘친구’를 원하는 게 아니야.
“됐어. 미안, 나 갑자기 볼일 생겨서. 오늘은 혼자 가는 게 좋겠다.”
“아? 으…응…….”
“미안, 갑자기. 늦었는데 조심해서 들어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내일 모레 보자고.”
“응…잘 가, 하리.”
스쳐 지나치며 교실을 나선다.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에키에게 연락이 온 것은 그날 밤늦게의 일이었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늦게.”
“하리야. 너, 그 녀석, 좋아하냐?”
스트레이트. 갑작스런 질문에 하리는 머뭇거렸다.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간다.
“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 바보냐?”
“나 말이야.”
애써 꺼낸 말을 가로 막으며 사에키는 말했다.
“아무에게도 얘기한적 없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그 녀석을 찾고 있었어.”
“…….”
“만나서 기뻤어. 겨우 만났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허공을 응시하며 말하던 사에키가 돌연 하리를 직시했다. 그 눈은, 아까 학교에서의 눈이었다.
“아무한테나 넘겨 줄 생각 없어.”
“뭐야 그건.”
아무한테나, 라니.
“그게 다야. 밤늦게 불러내서 미안했다.”
자기 할 말만 끝내곤 사에키 테루는 돌아가 버렸다.
아무한테나 넘겨 줄 생각 없어, 라니……뭐야 그거. 바보냐. 어차피 그녀석이 보고 있는 건 내가 아닌데.
“정말 어쩌란 거야.”
한숨이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그 후로 직접적으로 사에키와 만나는 일은 없어져 버렸다. 그녀는 조금 의아해 했지만, ‘싸웠어.’라는 한마디로 무마시켜버렸다. 싸웠달까, 멋대로 선전포고 당한거지만.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덧 졸업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사에키에게서 일방적인 연락을 받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녀석을 잘 부탁한다.’
웃기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을 볼때마다 테루가! 하면서 징징대는걸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힘들어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는게 힘들었다. ‘잘 부탁한다’는게 진심이 아니란 것 정도는 하리도 알 수 있었다. 너무 일방적이라 맘에 안 들어.
그리고 졸업식이 왔다.
“그렇게 말해놓고선.”
사에키는 이미 등대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잘 부탁한다는건 오늘을 위해서였냐.
등대에 기대 하리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한다, 하고 멍하게 있는데, 그녀가 오는게 보였다.
그래. 나라고 아무한테나 넘겨줄 마음은 없지. 어떻게 될지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역시 데리고 간다고 하면 그날의 바다가 좋겠지.
하리는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